온누리신문속 사회선교부

특별한 여름 아웃리치 준비하자! (산본안산공동체, 노원공동체)

By 2015-04-30 No Comments

온누리신문 제1007호 2014년 7월 8일

특별한 여름 아웃리치 준비하자!

복음 들고 열방으로 떠나는 아웃리치 계절이다. 어디로 갈까. 가서 무슨 사역을 할까. 공동체마다 아웃리치 준비에 여념이 없을 시기다.여기 특별한 아웃리치를 준비하는 공동체가 있다. 온누리교회가 지향하는 세계선교와 사회선교를 병행하는 특별함이다. 아웃리치를 준비하는 많은 팀들에게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또 아웃리치를 갈까 말까 고민하는 성도들에게도 도전이 될 만한 사연도 있다.
온누리교회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올 여름 아웃리치의 주역이 되는 바람을 담아 소개한다.
/ 편집자 주

산본안산공동체의 ‘긍휼사역 아웃리치’
순 단위로 국내에서 사회선교 실천

산본안산 순 아웃리치 발대식

산본안산공동체는 올 여름 특별한 아웃리치를 진행한다. 왜 특별한 아웃리치인지 살펴보자.
일단 모든 지체들이 빠짐없이 참가한다. 공동체 단위의 아웃리치가 아니라 순 단위다. 순장 중심으로 진행된다. 지역도 해외가 아닌 국내다. 안산M센터, 지역교회, 요양병원, 어린이집, 호스피스 병원 등으로 아웃리치를 간다. 산본안산공동체의 올 여름 아웃리치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긍휼사역 아웃리치’다. 특별하지 않을 수 없다.
산본안산공동체의 여름 아웃리치는 지난달 24일 시작돼 8월 24일까지 이어진다. 지난달 24일에는 공동체 종강예배를 드리면서 순 아웃리치 발대식도 열었다.

발대식에서 김형회 목사(산본안산공동체 담당)는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를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하며 모든 순 식구들이 특별한 여름 아웃리치에 동참할 것을 권면했다. 이어 각 순은 여름 아웃리치를 갈 지역과 사역 내용, 참여인원 등을 발표했다.
김종호 순장은 “이번 아웃리치는 세계선교와 사회선교를 두 축으로 나아가는 온누리교회의 선교방침을 실천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러한 움직임이 교회 전체에 퍼져나가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산본안산공동체가 순 단위 아웃리치를 준비하게 된 것은 지난 2012~2013년도 온누리 부흥축제에서 들은 프랜시스 챈 목사의 말씀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프랜시스 챈 목사는 “가난한 자, 고아와 과부, 소외된 이웃을 돕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값없는 은혜로 구원받은 크리스천들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올해 온누리교회가 사회선교본부를 발족한 것은 동력이 되었다. 공동체 운영위원회에서도 지금까지 실시해온 대규모 단위의 아웃리치보다 순 단위의 소규모 아웃리치를 통해 모든 지체들이 아웃리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자고 결정했다.

산본안산공동체가 섬기고 있는 지역 내에 안산 온누리M센터와 군포청소년쉼터 하나로가 있어 긍휼사역 아웃리치에 더욱 힘쓸 예정이다. 산본안산공동체가 실시하는 특별한 아웃리치 결과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아웃리치 결과보고는 공동체 개강예배에서 한다.
/ 정지은 기자 jji@onnuri.org

노원공동체, 신현기 성도 아웃리치 간증

노원공동체 필리핀 (2)

베풀고, 나누고, 봉사하고
“받은 은혜 돌려주는 아웃리치”

수년전 필리핀 세부로 여행을 갔을 때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다. 아름답고 풍요로운 리조트를 조금 벗어나면 보이는 빈민가의 모습이다.
“과거에는 한국보다 잘 살았다는데… 빈부격차가 심하구나.”
지난달 중순, 노원공동체에서 실시한 필리핀 선교사자녀(MK)들을 위한 아웃리치에 참여했다. 온누리교회를 다닌 지 십년이 다되어 가는데도 나는 봉사활동이나 아웃리치를 한 번 간 적 없었다. 주일예배만 개근을 하는 선데이 크리스천이었다.
얼마 전 회사를 사직하고 쉬고 있던 중 몇몇 집사님으로부터 권유를 받았다. 필리핀 아웃리치를 함께 가자는 제안이었다. 일주일동안 고민하다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던 빚진 마음에서 해방되었다.
필리핀 아웃리치에서 우리가 실시한 사역은 선교사 자녀들을 격려하고 돌보는 것이었다. 우리가 아웃리치를 간 첫날이 마침 ‘MK학교 20주년 기념예배’를 드리는 날이었다. 한국에서 파송된 선교사가 늘어나면서 선교사 자녀들의 교육문제가 큰 기도제목이 되었다. 하나님은 1994년 선교사 자녀들만을 위한 학교를 설립을 허락하셨다.
설립 초기에는 범교파적 후원을 받았다. 하지만 한국에 IMF 사태가 터지면서 후원이 끊겼다. 학교는 폐교 직전까지 갔다. 당시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님이 이곳을 방문했다. 어려운 사정을 전해들은 목사님이 도와주셨다고 한다. 그때 도움을 받아 현재의 위치로 학교를 옮기고 각종 편의시설도 완공되었다.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겠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이뤄진 사례로 기억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대학 한동대학교가 설립 후 어려움을 겪던 시절 하나님이 하용조 목사님을 사용하셔서 위기에서 벗어나게 했던 장면이 교차되었다.

그들도 우리처럼

그곳에서 우리는 중고등부 학생들과 함께 식사하고 게임을 했다. 장래의 꿈을 발표하는 스피치대회도 열고 평소에 가보지 못하는 리조트에도 데리고 갔다.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선교사 자녀들과 소통하고 격려했다.
선교사님 부부와 함께 다니며 선교지에서의 애환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삶이 얼마나 귀한지 깨달았다. 결혼 초부터 선교사 자녀들을 돌보고 있지만 학교로부터 보수를 받지 않는다는 선교사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하나님께서 필요를 채워주신다고 했다. 그들을 먹이고, 입히는 하나님의 섭리가 오묘하게 느껴졌다. 나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만 시간을 쓰는데….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선교사 자녀들은 한국의 일반 학생들과 다른 것이 있는 것 같았다. 부모와 떨어져 있는데도 밝았다. 부모들의 사역을 이해하고, 자신들도 그 길을 따라 가겠다고 하는 아이도 있었다. 이러한 선교사 자녀들을 보살피고 부모의 역할을 대신하는 사역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또 한 번 느꼈다.
현지에서 긍휼사역도 했다. 필리핀의 빈민촌은 충격적이었다. 쓰레기 천지였다. 야산 위에 펼쳐진 판잣집, 진흙탕 골목길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그들의 발과 다리에는 피부병으로 성한 곳이 없었다.
빈민가에 한국인 선교사가 세운 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렸다. 좁은 골목길 옆에 문도 없이 건물만 서있었다. 아직 짓고 있는 중인지 십여 평 되는 예배당은 무척 어수선했다. 그곳에서 현지어로 준비해간 찬양을 했다. 예배에 참석한 성도들의 눈에 기쁨이 충만했다. 감사가 가득했다.
백여 년 전 서양 선교사들이 전해 준 복음이 밑바탕이 되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잘살게 됐고, 세계 선교의 주역이 되었다. 우리처럼 이 나라도 한국 선교사들이 세운 교회를 통해 현지인 사역자들이 배출되고, 그들의 후손들이 지구촌 곳곳을 다니며 받은 은혜를 돌려주는 나라가 되길 기도한다.
베풀고 나누는 삶을 경험했다. 타인을 위한 봉사,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체험했다. 나를 공동체 아웃리치에 초대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