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신문 제 1065호 | 2015년 9월 13일
과거 복음주의 진영에서 세계복음화를 위해 일어난 대표적 선교운동이 바로 로잔운동이다. 그동안 로잔대회는 3차(1차 1974년 로잔, 2차 1989년 마닐라, 3차 2010년 케이프타운)에 걸쳐 개최되었다. 복음주의 진영의 전통적 특징은 개인의 구원을 위한 전도를 교회의 사회적 참여나 책임보다 더 우선시하는 것이다. 1차 로잔대회 선언문은 교회의 사회참여를 언급하면서도 ‘전도의 우선성’을 훨씬 더 크게 부각시켰다.
그런데 2차 로잔대회를 거치면서 사회·정치적 참여를 통해 교회가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을 섬길 책임이 있음을 중요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존 스토트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개인의 물질적 필요가 너무 커서 물질을 나누어 주지 않으면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듣지 못할 수도 있다. 이는 강도 만난 사람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기름을 바르고 치료해주는 것이지, 그의 주머니에 전도지를 넣어주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사실, 복음주의 진영에서는 ‘전도의 우선성’과 ‘교회의 사회참여’에 관해 오랫동안 논쟁과 갈등이 있어 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전도와 사회참여가 상호 갈등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포함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사회적 활동은 전도의 결과’, ‘사회적 활동은 전도의 다리’, 혹은 ‘사회참여가 전도의 파트너’라는 생각이 널리 받아들여졌다. 전도와 사회참여는 가위의 두 날, 새의 두 날개와 같다는 말이다.
이런 생각들이 2차 로잔대회에서 다음과 같은 선언으로 나타났다.
“우리는 정의와 인권과 식량과 삶의 터전을 유린당한 자들을 향한 돌봄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가시적으로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2차 로잔대회의 정신은 3차대회에서 ‘총체적 선교’라는 이름으로 나타난다. 케이프타운 선언문 10장을 보면 “우리의 모든 선교가 이루어지는 장소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곧 죄와 고통과 불의와 창조질서의 왜곡으로 가득한 세상이며 이런 세상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보내셔서 그리스도를 대신해 사랑하고 섬기도록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선교는 복음전도와 세상에서의 헌신적 참여를 통합하는 것이어야 한다. (중략) 우리는 복음전도와 사회, 정치적 참여를 그리스도인의 의무의 두 부분임을 확언한다. 우리가 선포하는 구원은 우리로 하여금 개인적 책임과 사회적 책임을 총체적으로 수행하도록 우리를 변화시켜야 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온누리교회도 작년부터 이런 총체적 선교의 정신으로 사회선교를 시작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회선교 사역의 성격이 2차 로잔대회 선언문에 잘 요약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선교는 항상 성육신적이다. 참된 선교를 위해서는 겸허하게 그 사람들의 세계에 들어가서 그들이 처한 사회적 현실, 슬픔과 고통, 그리고 압제 세력에 항거하며 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그들의 노력에 동참할 필요가 있다.”
온누리교회 성도들이여. 사회선교를 위해 이렇게 기도하자.
첫째 온누리교회가 우리 사회의 가난한 자, 억눌린 자, 소외된 자를 돌아보고 그들의 경제적, 영적 필요를 채우는데 헌신하도록 기도하자. 그들이 처한 현실과 슬픔, 고통에 동참하는 성육신적 사회선교를 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둘째 생명을 존중하고 환경을 보전하는 건강한 생명운동이 일어나 창조질서를 회복할 수 있도록 기도하자. 특히 최근 창조질서를 교란하는 동성애와 성매매 합법화 시도 뒤에 숨어있는 사탄의 궤계가 무너지도록 기도해야 한다.
셋째, 하나님의 공의가 굳게 세워져 불법(不法)과 불의(不義)를 행하는 자들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이 없어지도록 기도하자. 독재권력, 종족 간 갈등, 인신매매, 아동노예, 전쟁, 테러, 인도의 카스트제도와 같은 제도적 폭력들을 제거하는 일에 교회가 헌신해야 한다.
/정운오 장로(사회선교 분과위원)